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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은 무엇을 먹지 않는가에 관한 이야기로만 설명되곤 한다. 고기와 생선을 먹지 않고, 우유와 달걀을 선택하지 않는 식생활. 하지만 비건이라는 삶의 태도는 식탁 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땅과 생태계 위에서 생산되었는지 질문하는 일. 익숙한 소비의 방식을 조금씩 바꾸고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는 일이 비건의 중요한 일부다.
제4회 제철비건산책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오는 14일 토요일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제주시 새활용센터(고다시길 39)에서 제4회 제철비건산책이 열린다. 올바른농부장, 비건책방,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주최·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제주 농부와 로컬 식가공팀, 비건 요리팀, 독립서., 출판·창작자들이 함께 만드는 비건 컬처 마켓이다.
▲ 제4회 제철비건산책 포스터
ⓒ 제철비건산책
행사를 공동 기획한 김문경(비건책방 대표), 문희선(올바른농부장 대표)은 제철비건산책의 시작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바로 이곳에서, 비건적인 삶과 연결되는 하루를 함께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제철비건산책의 시작이었습니다."
"비건의 마음과 농부의 마음이 그 바탕이 같은 무늬라는 걸 개인적으로도 많이 느끼고 있으니까요."
이들의 말에는 제철비건산책이 지향하는 방향이 담겨 있다. 비건을 특별한 사람들만의 실천이나 멀리 있는 이상으로 이야기하기보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지역에서 발견하고 경험할 수 있는 삶의 방식으로 제안하는 것이다. 제주에서 자라고 수확한 작물을 만나고, 지역의 생산자가 만든 음식을 맛보고, 책을 통해 다른 삶의 가능성을 읽으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하루. 제철비건산책은 비건을 일상의 구체적인 경험으로 연결하고자 한다.
'제주에는 감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행사에는 제주에서 농산물을 재배하고 지역 식품을 만드는 농부와 로컬 식가공팀만 삼십여 팀 가까이 참여한다.
제주를 대표하는 감귤과 황금향, 레드키위, 용과부터 단호박, 미니당근, 고구마, 토란, 브로콜리, 콜라비, 각종 샐러드 채소와 허브까지. 익숙한 농산물 사이로 제주 독새기콩과 토종동부, 야생고사리, 산약초, 꾸지뽕처럼 지역의 농업과 생태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작물들도 자리한다.
눈여겨볼 것은 농산물의 종류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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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된 작물이 지역 안에서 어떻게 새로운 먹거리로 만들어지는지도 이번 시장의 중요한 풍경이다.
문사기름집은 유기농 제주 레몬으로 만든 신제품 비건버터를 선보이고, 볍씨학교는 직접 농사 지은 콩으로 만든 템페와 통밀빵을, 제주밀팡은 제주 통밀을 활용한 팝과 베이커리를 준비한다. 옵트와 제주한잔처럼 제주 원물로 만든 그래놀라와 제주 전통주를 소개하는 팀도 있다. 블루베리잼과 감귤칩, 댕유자청, 레드용과잼 등 농부가 본인의 농작물로 직접 만든 가공품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구성은 제주 농업을 단순히 신선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일로만 바라보지 않게 한다. 농산물이 식품으로 가공되고, 새로운 식문화와 상품으로 확장되며, 다시 지역의 소비자와 만나는 과정까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유기농·무농약 농산물과 토종 작물, 소규모 생산자들의 참여 역시 중요하다. 모든 생산 방식을 하나의 기준으로 묶을 수는 없지만, 땅과 작물, 생산의 과정을 고민하는 생산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에서 이번 시장은 제주 농업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누구나 함께 먹을 수 있는 비건 식탁'
이번 제철비건산책에서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모든 음식이 비건이라는 사실이다. 특정한 식습관을 가진 사람들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누구나 찾아와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시장을 만들고자 했다. 비건이 익숙한 사람에게는 반가운 식탁이 되고, 비건 음식이 낯선 사람에게는 새로운 맛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세 팀의 비건 식당이 함께한다. 이들은 평소 선보이는 메뉴를 그대로 가져오는 데 그치지 않고, 제철비건산책을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메뉴를 창의적으로 해석하고 정성껏 준비한다. 함께하는 행사에 대한 우정과 환대의 마음을 음식에 담아내는 것이다.
카고크루즈는 호박을 활용한 플랫브레드와 샐러드, 사워도우 포카치아를 선보인다. 숨비다는 제주 비건버터를 넣은 미소 콘버터 라멘을 준비하고, 란스키친은 반미와 젤라또를 내놓는다. 오늘 베를린의 핸드드립 커피와 미유당차공방의 육보차, 빙떡도 함께한다.
농부가 기른 제철 작물이 요리사의 손을 거쳐 새로운 음식이 되고 그 음식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의 식탁이 만들어진다. 이곳에서 비건 음식은 무엇을 먹지 않는다는 제한이 아니라, 얼마나 다채롭고 맛있게 함께 먹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경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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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마시고, 읽고 쓰는 비건의 풍경'
책과 출판을 둘러싼 풍경도 빼놓을 수 없다. 제주의 환경 책방인 비건책방과 어나더페이지를 비롯해 파지앤양양, 할방이네 등 제주에서 독립적인 출판과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로컬 출판·창작자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책은 농부의 밭과 식탁을 연결하는 또 다른 통로다. 생태와 환경, 비건, 지역의 삶을 다룬 책을 읽는 일은 우리가 매일 선택하는 음식과 소비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제철비건산책이 책을 중요한 축으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건을 먹거리의 영역에 가두지 않고 생각하고 읽고 이야기하는 문화로 확장하고자 한다.
농부와 요리사, 책방과 창작자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우연한 조합이 아니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삶을 고민해 온 사람들이 지역이라는 공통의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다.
'구경하는 시장에서 함께 만드는 시장으로'
이번 행사에서는 물건을 사고 음식을 맛보는 일 외에도 방문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마련된다.
오후 1시부터 2시까지는 피아니스트 문희숙과 바이올리니스트 김준수의 연주로 가을의 클래식을 만나는 '가을클래식산책'이 열린다. 이어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모두의 피아노, 당신의 한 곡'이 진행된다. 잔디밭에 마련된 피아노에서 시민들이 직접 연주하고 서로의 음악을 나누는 열린 참여 프로그램이다. 전문 연주자의 공연을 감상하는 데서 나아가 누구나 음악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참여자들이 직접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누는 프로그램도 있다. '제철비건산책 6행시 백일장'에서는 행사 이름을 주제로 여섯 줄의 시를 지어 제출할 수 있다. 선정된 작품은 행사 이후 발표하며, 수상자는 다음 올바른농부장에서 상품을 받을 예정이다.
'제철비건 퀴즈산책'은 제철 농산물과 농부, 비건 생활과 책에 관한 퀴즈를 풀어보는 현장 프로그램이다. 정답을 맞힌 참가자에게는 참여 셀러들이 준비한 선물을 증정한다.
이 프로그램들은 시장을 일방적으로 구경하고 소비하는 공간에서 함께 참여하고 기억을 만드는 공간으로 확장한다. 누군가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누군가는 여섯 줄의 시를 쓰며, 누군가는 퀴즈를 통해 평소 지나쳤던 농산물과 비건에 관한 이야기를 새롭게 알게 된다.
'일회용품 없이, 조금 더 다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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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비건산책은 무엇을 먹고 구매할 것인지뿐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행사를 즐길 것인지도 함께 고민한다. 행사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텀블러와 다회용기를 꼭 챙겨오기를 당부하는 이유다.
음료를 담을 텀블러와 음식을 담을 다회용기를 가져오는 일은 작은 준비처럼 보이지만, 일회용품을 당연하게 사용하는 시장의 풍경을 바꾸는 실천이기도 하다. 물건을 구매할 때 사용할 장바구니도 함께 준비하면 좋다.
완벽하게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가능한 만큼 함께해 보는 것. 제철비건산책은 지속가능한 삶을 거창한 구호로 이야기하기보다, 장바구니와 텀블러를 챙기는 일처럼 손에 잡히는 행동으로 제안한다.
'각자의 실천이 만나 하나의 산책이 된다'
제철비건산책이 지향하는 것은 완벽한 비건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가능한 방식으로 조금씩 다른 선택을 해온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실천을 발견하고 연결하는 것이다.
농부에게는 자신이 기른 작물과 생산의 이야기를 직접 전할 기회가 되고, 식가공 생산자에게는 지역 농산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리가 된다. 책방과 창작자에게는 책과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며, 방문객에게는 평소 접하지 못했던 생산자와 먹거리, 생활 방식을 발견하는 시간이 된다.
비건은 먼 곳에서 시작되는 특별한 생활 방식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지역의 농부를 알고, 제철에 나는 작물을 먹고, 가까운 생산자가 만든 음식을 선택하고, 책을 통해 다른 삶을 상상하는 일. 우리가 발 딛고 사는 곳에서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연결들이 모여 삶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11월 14일, 제주시 새활용센터에서 열리는 제4회 제철비건산책은 그 연결을 직접 경험해 보는 자리다. 제주 농부와 생산자, 요리사와 책방, 창작자와 시민이 함께 만드는 하루. 각자의 장바구니를 들고, 텀블러와 다회용기를 챙겨 새로운 책과 음식을 만나고, 음악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산책에 초대한다.
제4회 제철비건산책
일시: 2026년 11월 14일(토) 12:00~17:00
장소: 제주시 새활용센터(제주시 고다시길 39)
주최·주관: 올바른농부장 · 비건책방 ·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협력: 제주시 새활용센터 · 제주시 로컬푸드연구회 · 다품종소량생산연구회 · A.3355
참여: 총 36팀 (제주 농부 및 로컬 식가공팀, 비건 식당, 독립서., 출판·창작자 등)
※ 방문객 준비물: 텀블러, 다회용기, 장바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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