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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우산 후원자 최지은 씨가 지난해 11월 면역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노트북으로 작업하다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다. 최 씨는 방사선 치료차 방문한 병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어린이 환자를 보고 나눔을 결심했다. 초록우산 제공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벌을 받는 걸까.’
4기 암으로 투병하던 최지은(여·41) 씨는 수없이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억울함에 몸서리치는 날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어린아이를 마주쳤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아이 옆에는 넋이 나간 표정의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최 씨는 문득 생각했다. ‘내가 아픈 데 반드시 이유가 있다면 저 어린아이는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을까.’ 그날 이후 최 씨의 질문은 달라졌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가 아니라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였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는 나눔으로 이어졌다. 최 씨는 올해 초 아동복지전문기관 초록우산에 2000만 원을 기부했다. 자신의 암 투병 경험과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담은 에세이 ‘그렇게 나는 다시 삶을 선택했다’의 인세에 같은 금액의 사비를 보탰다. 기부금은 자신과 같은 병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부탁했다. 최 씨는 “제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을 지나며 쓴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닿고, 다시 누군가의 삶에 작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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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환자와의 만남은 고통에 반드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줬다. 병이 안정되고 일상을 되찾는다면 언젠가 아픈 아이들을 돕겠다는 다짐도 그때 시작됐다. 그는 “제가 겪은 일이 좋은 일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이미 일어난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만들어낼지는 어느 정도 제가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기부를 준비하면서 나눔의 의미도 한층 넓어졌다. 처음에는 소아암 환자를 돕는 일이라면 당연히 치료비 지원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록우산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환아와 가족에게 필요한 지원이 훨씬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방에서 서울로 항암치료를 받으러 오는 아이와 보호자에게는 치료 전후 머물 공간이 필요하다. 부모의 관심이 아픈 아이에게 집중되는 동안 형제자매들이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하는 문제도 있었다.
최 씨는 “아이의 질병은 아이 한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고 부모와 형제자매, 가족의 일상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며 “한 아이를 돕는다는 것은 그 아이와 가족이 힘든 시간을 조금 더 잘 살아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지난 5월 방사선 치료를 마친 뒤 남편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최지은 씨. 초록우산 제공
이번 기부에는 특별한 이름 두 개가 더해졌다. 조카 아리아와 애쉬튼이다. 두 아이는 최 씨가 암과 싸우는 동안 큰 힘이 돼 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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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아도 아이들이 웃고 곁에 있는 것만으로 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었다. 최 씨는 “어린이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웃게 하고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며 “두 아이에게 받은 힘을 다른 아이들에게 돌려준다는 의미에서 함께 기부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완치된 최 씨는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메타에서 아시아 지역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앞으로도 자신의 일을 잘하는 것이 나눔을 이어가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새로운 책을 쓰거나 직접 글과 그림을 그린 어린이 그림책을 펴내는 것도 꿈꾸고 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 나눌 수 있는 것도 함께 많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씨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열어주는 일이다. 아이들은 태어날 가정이나 경제적 환경, 자신의 건강 상태를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조건 때문에 미래의 가능성마저 일찍 닫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 씨는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까지 가능한 한 다양한 선택지를 열어주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나눔을 망설이는 이들에게는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전했다. 돈뿐 아니라 시간과 지식, 능력도 나눌 수 있는 자산이라는 것이다. 최 씨는 “모든 나눔은 나와 관계없는 누군가의 삶에도 관심을 갖는 데서 시작된다”며 “분명 내가 가진 것을 내어놓는 일인데 오히려 내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고 전했다.
문화일보 - 초록우산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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