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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전 8시, 경북 울진 죽변항 위판장은 갓 잡아 올린 생선으로 활기가 넘쳤다. 바닥에 늘어선 상자마다 은빛 생선이 빼곡했다. 몇 시간 전까지 동해를 헤엄치던 물고기들이 이름과 무게, 가격을 얻는 곳. 여행객에게는 싱싱한 먹거리지만, 주민들에게는 하루의 생업이 시작되는 현장이다.
아침 경매를 앞둔 울진 죽변항 수산물 위판장에 갓 잡아 올린 생선이 가득 놓여 있다. 죽변항에서는 오는 11월 6일부터 8일까지 수산물 장터와 즉석경매, 맨손 활어잡기 등을 즐길 수 있는 죽변항수산물축제가 열린다. 김희윤 기자
경북 울진 여행을 죽변항에서 시작하면 좋은 이유가 있다. 울진은 방금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과 아주 오래된 것들이 이상할 만큼 가까이 붙어 있는 곳이다. 항구에는 오늘 아침의 생선이 있고, 언덕에는 116년째 불을 밝히는 등대가 있다.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2억5000만년의 시간이 굳어 있는 동굴이 나오고, 산으로 들어가면 천년 고찰이 기다린다. 울진에서는 몇 시간 운전하는 사이 시간의 단위가 '오늘'에서 억년으로 바뀐다.
그중에서도 가장 젊고 부산한 시간은 다시 죽변항에 찾아온다. 오는 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가자, 죽변항! 먹자, 수산물!'을 내건 죽변항수산물축제가 열린다. 방어와 오징어, 전어 등 울진 앞바다에서 올라온 수산물을 파는 장터가 서고 맨손 활어잡기, 수산물 즉석경매, 해체쇼, 대형 물회 퍼포먼스와 시식 행사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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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축제는 어디에나 있을 법하다. 그런데 죽변항에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관광객을 위해 바다를 옮겨놓은 축제장이 아니라 원래 물고기가 들어오고, 팔리고, 식탁으로 떠나는 항구에서 잔치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위판장을 한 번 보고 난 뒤 수산물축제에 가면 '산지 직송'이라는 익숙한 광고 문구도 조금 다른 뜻으로 읽힌다. 여기서는 산지가 축제장 바로 옆이다.
죽변이라는 이름에는 뜻밖에도 물고기가 아니라 대나무가 숨어 있다. 이 일대에 소죽(小竹)이 많이 자라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화살 재료로 썼다. 죽변등대로 오르는 야트막한 언덕에도 지금 대나무가 빽빽하다. 1910년 11월 처음 불을 밝힌 등대는 대한제국 때 착공돼 내부 천장에 태극 문양이 남아 있다. 바다만 보고 지나치기 쉬운 항구에 대나무와 대한제국의 흔적이 나란히 얹혀 있다.
울진의 재미는 한 풍경에 좀처럼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죽변의 거친 항구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면 갑자기 풍경이 낮아진다. 평해사구습지생태공원이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첫인상은 소박하다. 갈대와 풀이 자란 평지, 낮은 물길, 나무 덱이 먼저 보인다. 그런데 조금 걸으면 이 무심한 벌판이 꽤 복잡한 장소임을 알게 된다. 바다의 모래언덕과 그 뒤에 생긴 습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남대천 하구가 서로 기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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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 월송정 일대의 해송림과 동해안 풍경.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인 월송정 주변에는 일제강.기 훼손된 뒤 1956년 마을 주민이 다시 심은 해송 숲이 펼쳐져 있다. 울진군청
2006년 정밀조사에서는 수달과 삵, 매를 비롯해 모두 289종의 야생동물이 이곳에서 서식하거나 찾아오는 것으로 확인됐다. 화려한 관광시설 대신 생물이 살 자리가 남아 있었던 셈이다. 덱을 따라 걷다가 해송림을 통과하면 어느 순간 동해가 열린다. 습지와 솔숲과 바다가 차례로 나타나는데, 어느 하나가 앞장서려고 하지 않는다. 울진 풍경의 좋은 。이 이런 데 있다. 무엇을 보여주려고 애쓰지 않는 곳이 제법 많다.
그 길 끝에서 월송정을 만난다.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다. 정자도 아름답지만 이곳에서는 그 주변의 소나무를 한번 더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월송정을 둘러싼 솔숲은 그저 '천혜의 자연'이라고 부르기에는 사연이 있다. 일제강.기 울창했던 송림이 베어진 뒤 1956년 마을 주민 손치후가 해송 1만5000그루를 다시 심었다. 지금 우리가 오래된 풍경이라고 감탄하는 것 가운데 일부는 누군가 다시 만들어 놓은 자연인 셈이다.
월송(月松)이라는 이름은 달빛과 소나무가 어울린다는 데서 나왔다는 설이 있고, 신선이 솔숲을 날아 넘었다는 월송(越松)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어느 쪽이든 해가 넘어간 뒤가 궁금해지는 이름이다. 여행지는 종종 낮의 풍경만 팔지만, 월송정은 이름부터 밤을 예약해둔 곳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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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에는 땅 아래로 내려간다. 성류굴 입구에 서면 먼저 이상한 풍경 하나를 만난다. 동굴보다 그곳까지 가는 길이다. 절벽 아래로 난 길의 한쪽에는 바위가, 다른 쪽에는 왕피천이 따라온다. 기둥처럼 뚫린 구조물 사이로 강과 산이 번갈아 들어오면서 한 걸음씩 액자가 바뀐다.
굴 안으로 들어서면 시간의 감각은 더 크게 틀어진다. 약 2억5000만년 전에 형성된 석회암 동굴이다. 천장에서 내려온 종유석과 땅에서 솟은 석순이 오랜 세월 서로를 향하다 마침내 하나의 석주가 된다. 내부 온도는 연중 15~17도 안팎을 유지한다. 사람이 백년을 오래 살았다고 말하는 일이 이 안에서는 조금 민망해진다.
여정의 끝은 금강송 숲에 안긴 불영사다. 계곡을 따라 1㎞ 남짓 흙길을 걸으면 고즈넉한 사찰이 나타난다. 신라 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비구니 사찰로, 연못에 비친 부처 형상의 바위 그림자에서 이름을 얻었다. 대웅보전 아래 놓인 돌거북 두 마리도 눈길을 끈다. 절터의 강한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 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금강송과 연못, 장독이 어우러진 경내에는 오랜 세월의 평온함이 배어 있다.
울진의 매력은 서로 다른 시간의 풍경이 한 여행길에 이어진다는 .이다. 아침마다 생선이 들어오는 항구에서 출발해 주민들이 되살린 솔숲을 걷고, 수억 년의 동굴을 지나 천년 고찰에 닿는다. 11월 죽변항수산물축제를 즐긴 뒤 천천히 남쪽으로 길을 잡아도 좋겠다. 싱싱한 바다의 맛부터 깊은 세월이 빚은 풍경까지, 울진에서는 오래된 것조차 여전히 생생하다.
'산지 직송'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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