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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로 선운사’.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제공
“지금 뭐 하는 거야? 사람들 자야 하는데!”
지난해 4월 경남 하동 쌍계사. 자정을 앞두고 청춘남녀 참가자들이 사찰 앞 가로등 아래서 대화를 이어가자 경비를 맡은 처사가 대나무 막대기로 아스팔트를 두드리며 나타났다.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의 미혼남녀 만남 프로그램 ‘나는 절로’를 담당하는 유철주 기획홍보위원이 들려준 일화다. 밤 9시면 잠자리에 들던 과거의 ‘만남 템플스테이’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2013년 보건복지부의 인구 인식 개선 사업으로 출발한 만남 템플스테이는 청춘남녀를 사찰에 초청했지만 예불과 108배, 식사 후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일정이 채워져 정작 서로를 알아갈 시간이 부족했다. 참가자를 채우지 못해 재단 직원이 대신 자리를 메우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사업은 사실상 중단됐다.
‘나는 절로 봉선사’.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제공
변화는 2023년 찾아왔다. 당시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로 돌아온 묘장 스님은 사업 재개를 건의받자 “옛날처럼 하려면 하지 마라. 다시 하려면 다 바꿔오라”고 주문했다. 재단에서 기획안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자 “이러면 ‘나는 절로’네”라는 댓글이 달렸다. 재단 관계자들은 인기 연애 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를 연상시키면서 사찰 특성을 살린 아이디어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해 11월 조계사에서 ‘나는 절로’ 첫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공식 매칭은 하지 않았다.
본격적인 변화는 2024년 4월 인천 강화군 전등사에서 열린 행사부터다. 프로그램을 전담한 유 위원은 과거 행사엔 매칭이 없었다는 。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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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칭을 하고 결혼도 시키고 아이도 낳게 해야죠. 사업 목적이 그건데요.” 이후 사찰로 이동하는 버스 좌석부터 식사와 프로그램까지 남녀가 함께하도록 바꿨다. 호감이 있어도 먼저 다가가기 어려운 참가자를 위해 재단 관계자가 상대의 의사를 물어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사찰음식 명장 선재 스님과 함께하는 나는 절로’.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제공
사찰의 밤 9시 취침 규칙도 주지 스님과 협의해 밤 11시로 늦췄다. 참가자들이 충분히 대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실제론 새벽 4시까지 대화가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예불과 108배 등 종교의식도 사찰 여건에 따라 조정했다. 불교문화 체험보다 서로 눈을 맞추고 대화할 기회를 늘리는 게 인연을 맺는 핵심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사찰과 지역 특색을 살린 프로그램도 구체화했다. 김천 직지사에서는 자두, 포도 등 특산물에 착안해 참가자 가명을 지었고, 양양 낙산사에서는 견우와 직녀 설화를 만남에 활용했다. 속초 신흥사에서는 강원관광재단과 협력해 해변 찻집에서 1대1 로테이션 차담을 진행했다. 장성 백양사와 남양주 봉선사에서는 각각 사찰음식 명장 정관 스님, 선재 스님과 요리하며 서로를 알아갔다. 유 위원은 “사찰마다 다른 역사와 설화, 자연경관 등을 살리면 ‘나는 절로’는 무궁무진하게 변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가자 선발 방식도 달라졌다. 사진과 신청서 대신 1분 자기소개 영상을 제출하도록 했다. 가족과 함께 등장하거나 노래와 춤 등 장기를 보여주는 참가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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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보다는 자신을 표현하려는 성의와 태도에 우선순위를 둔다.
‘나는 절로 낙산사’ 1대1 차담.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제공
변화의 성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2023년 11월부터 올해 11월까지 누적 신청자는 1만8653명, 성사된 커플은 93쌍이다. 단순한 만남을 넘어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기회를 만들어낸 것이다. 5쌍이 결혼에 성공했고, 첫 아이를 낳은 부부도 나왔다. 결혼을 앞둔 커플도 7쌍이다. 이들이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을 찾아 인사하는 일도 잦아졌다.
재단 역할은 인연을 맺어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혼수와 주거 문제, 부모의 반대를 극복하는 방법까지 상담해요. 서로 좋아하지만 집안의 반대 때문에 결혼을 진행하지 못하는 커플의 사정을 듣고 직접 부모를 만나보겠다고 나선 일도 있어요.” 방송과 유튜브 편성·협업 제안도 많았지만 사생활이 공개되거나 프로그램을 예능화해선 안 된다는 원칙에 따라 모두 거절했다.
‘나는 절로 수덕사’ 장기 자랑.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제공
프로그램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오는 7일에는 공주 한국문화연수원에서 코미디언 윤성호의 ‘부캐’ 뉴진 스님과 함께하는 ‘나는 절로 극락파티’를 연다. 뉴진 스님 공연과 로테이션 차담, 불멍 데이트 등이 진행된다. 12월5~6일에는 합천 해인사에서 30~40대 특집을 개최한다. 쇄도하는 40대 신청자의 요청을 반영한 것이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누리집에서 오는 16일 오전 10시까지 신청을 받는다. 해인사 주지 혜일 스님은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조성한 선조의 뜻을 이어 저출생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한다는 마음으로 ‘나는 절로’를 개최하게 됐다”고 밝혔다. 기존 참가자와 결혼을 준비하는 커플, 신혼부부가 함께 어울리는 자리도 구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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